노션, 남들은 쉽다는데 왜 나만 어려울까? ‘블록’의 비밀을 깨닫고 정착한 1년의 기록

1. 프롤로그: “도대체 저장 버튼은 어디 있는 거야?”

 

제가 처음 노션(Notion)이라는 도구를 접했던 때가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바야흐로 ‘일잘러’ 열풍이 불면서 너도나도 에버노트에서 노션으로 갈아타던 시기였죠. 저도 트렌드에 뒤처지기 싫어 호기롭게 회원가입을 하고 앱을 켰습니다.

“이제 나도 스마트하게 일하는 커리어맨이 되는 건가?” 하는 기대감은 딱 3초 만에 무너졌습니다.

화면에 뜬 건 광활하고 하얀 빈 페이지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쓰던 한글이나 워드(Word)처럼 상단에 친절한 메뉴바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폰트를 바꾸는 버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껌벅거리는 커서를 보며 “안녕하세요”라고 적어봤지만, 그다음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더군요. 심지어 문서를 작성하고 습관적으로 찾는 ‘저장(Save)’ 버튼조차 없어서, 창을 닫으면 기껏 쓴 글이 날아갈까 봐 전전긍긍했습니다.

결국 저는 3일 만에 노션을 끄고, 다시 익숙한 노란색 메모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랑은 안 맞네. 역시 심플한 게 최고지”라며 합리화하면서요. 아마 이 글을 검색해서 들어오신 분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업무 일지부터 가계부, 독서 노트, 심지어 여행 계획까지 모든 삶의 궤적을 노션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노션 포기자’에서 ‘노션 예찬론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유튜브 강의를 10시간 봐서가 아닙니다. 바로 노션의 핵심 DNA인 **’블록(Block)’**이라는 개념 딱 하나를 제대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초보자가 가장 먼저 넘어야 할 벽, 하지만 넘기만 하면 신세계가 열리는 ‘블록’에 대한 이야기를 제 경험담과 섞어 아주 상세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2. 패러다임의 전환: 노션은 ‘문서’가 아니라 ‘레고’다

 

우리가 흔히 쓰는 문서 도구들, 그러니까 워드나 한글, 메모장은 기본적으로 **’종이’**의 개념을 디지털로 옮겨온 것입니다. 줄글을 쭉 써 내려가는 방식이죠. 여기서 엔터(Enter) 키는 단순히 ‘줄 바꿈’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노션은 다릅니다. 노션에서 엔터(Enter) 키는 “새로운 레고 블록 하나를 꺼낸다”는 의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이 노션에 “오늘의 할 일”이라고 적고 엔터를 쳤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 눈에는 그냥 줄이 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노션의 시스템상에서는 ‘텍스트 블록’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덩어리가 생성된 것입니다.

  • 기존 워드 프로세서: 문단과 문단이 종이 위에 잉크로 인쇄된 것처럼 꽉 붙어 있음. 수정하려면 지우고 다시 써야 함.

  • 노션: 문단과 문단이 각각의 ‘플라스틱 블록’처럼 떨어져 있음. 언제든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음.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노션 정복의 50%입니다. 글이 ‘블록’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장을 통째로 들어서 위아래로 순서를 바꿀 수 있고, 옆으로 옮겨서 잡지처럼 단을 나눌 수도 있으며, 심지어 다른 페이지로 쏙 빼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즉, 노션으로 글을 쓰는 행위는 종이에 글씨를 쓰는 게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라는 재료로 레고 블록을 쌓아 올리는 ‘건축’ 행위에 가깝습니다. 이 개념이 머릿속에 잡히니 그때부터 노션이 지루한 숙제가 아니라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지더군요.


3. 노션 고수가 되는 첫걸음: 마법의 키 ‘슬래시(/)’

 

노션을 처음 쓸 때 제가 가장 답답했던 건 “이미지는 어떻게 넣어?”, “체크박스는 어디 있어?” 하며 마우스로 화면 구석구석을 찾아헤매던 시간이었습니다. 메뉴가 숨겨져 있으니 초보자 입장에서는 보물찾기하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노션 고수들은 마우스를 거의 쓰지 않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키보드의 슬래시(/) 키입니다.

빈 블록(줄)에서 /를 한번 입력해 보세요. 그 순간 노션이 숨겨왔던 모든 기능 보따리를 팝업창으로 띄워줍니다.

  • 글씨를 크게 제목으로 쓰고 싶을 때: /제목

  • 할 일 목록(네모 박스)을 만들고 싶을 때: /체크

  • 사진을 첨부하고 싶을 때: /이미지

  • 엑셀 같은 표를 넣고 싶을 때: /표

  • 강조하고 싶은 박스를 넣을 때: /콜아웃

저는 처음에 이걸 몰라서, 텍스트를 쓰고 왼쪽에 있는 ‘+’ 버튼을 일일이 클릭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하지만 슬래시 명령어에 익숙해진 지금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지 않고 타닥타닥 문서를 만들어 나갑니다. 마치 코딩하는 개발자가 된 듯한 쾌감도 있고요.

여러분도 일단 빈 화면에 /를 치고, 스크롤을 천천히 내려보며 어떤 블록들이 있는지 구경해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기능의 절반은 배운 셈입니다.


4. 디자인 감각 0점도 괜찮아: ‘점 6개’ 손잡이의 마법

 

PPT로 제안서를 만들 때 가장 스트레스받는 게 무엇인가요? 텍스트 상자 배치하고, 줄 맞추고, 간격 조절하는 디자인 작업일 겁니다. 노션은 이런 고민을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글을 쓰다가 마우스 커서를 블록(문장)의 맨 왼쪽으로 살짝 가져가 보세요. 희미하게 점 6개(⋮⋮)가 찍힌 아이콘이 나타날 겁니다. 저는 이걸 **’블록의 손잡이’**라고 부릅니다.

이 손잡이의 기능은 정말 강력합니다.

첫째, 자유로운 이동(Drag & Drop)입니다. 점 6개를 마우스로 꾹 누른 채 드래그해 보세요. 블록이 둥둥 떠다니며 원하는 위치 어디든 끼워 넣을 수 있습니다. 회의록을 쓰다가 “아, 이 내용은 위로 올리는 게 좋겠는데?” 싶으면 복사-붙여넣기 할 필요 없이 그냥 드래그하면 됩니다.

둘째, 전문가 같은 ‘다단 나누기’입니다. (이게 진짜 꿀기능입니다!) 손잡이를 잡고, 다른 블록의 가장 오른쪽 끝으로 가져가 보세요. 파란색 세로줄이 생기는 순간 놓으면? 순식간에 화면이 2단, 3단으로 나뉩니다. 왼쪽엔 사진을 넣고 오른쪽엔 설명을 쓰거나, 메뉴판처럼 양쪽으로 정보를 배치하는 레이아웃을 단 1초 만에 만들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그럴듯한 웹페이지 같은 문서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노션의 킬러 기능이죠.


5. 실수를 두려워 말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전환’ 기능

 

열심히 줄글로 회의 내용을 받아 적었는데, 나중에 팀장님이 “이거 체크리스트로 바꿔서 공유해 줘”라고 한다면? 예전 같으면 한숨을 쉬며 내용을 지우고 다시 썼을 겁니다.

하지만 노션에서는 ‘블록의 속성’만 바꿔주면 됩니다. 이것도 아까 그 ‘점 6개’ 손잡이를 클릭하면 해결됩니다.

  1. 바꾸고 싶은 글의 왼쪽 점 6개 클릭

  2. ‘전환(Turn into)’ 메뉴 선택

  3. 원하는 형태(할 일 목록, 제목, 인용, 글머리 기호 등) 선택

이 과정을 거치면 평범했던 텍스트가 순식간에 네모난 박스가 달린 체크리스트로 변신합니다. 저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일단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막 적어놓습니다(텍스트 블록). 그리고 나중에 이 기능으로 중요한 건 ‘제목’으로 키우고, 세부 사항은 ‘글머리 기호’로 바꾸며 정리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써야 해”라는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이 유연한 기능 덕분입니다.


6. 무한한 깊이의 정리함: ‘페이지 속의 페이지’

 

마지막으로, 제가 노션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이자 노션이 ‘제2의 뇌’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노션은 폴더 정리가 필요 없습니다. 대신 러시아 인형(마트료시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슬래시(/)를 누르고 페이지를 선택해 보세요. 그러면 글을 쓰던 중간에 밑줄 그어진 문서 링크가 하나 툭 생깁니다. 그 링크를 클릭하면? 또다시 새로운 하얀 도화지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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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정보를 무한히 깊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윈도우 탐색기에서 폴더를 만들고 파일을 넣는 방식은 직관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폴더를 찾다가 흐름이 끊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노션은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가 “어? 이 내용은 좀 길어지겠는데 따로 빼야겠다” 싶으면 바로 페이지를 만들어 쑥 집어넣으면 됩니다. 이 구조 덕분에 노션은 단순한 메모장을 넘어 나만의 위키(Wiki), 나만의 도서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7. 에필로그: 일단 아무거나 쌓아보세요

 

노션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기능이 너무 복잡해서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너무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가이드라인 하나 없는 하얀 도화지를 주고 “마음대로 집을 지어봐”라고 하니 막막한 것이죠.

하지만 오늘 배운 ‘블록’ 개념만 기억하신다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1. 엔터는 블록을 만드는 것.

  2. **슬래시(/)**는 블록의 모양을 정하는 것.

  3. 점 6개는 블록을 옮기고 바꾸는 것.

이 세 가지만 알면 여러분은 이미 노션 기능의 80%를 익히신 겁니다. 거창한 대시보드나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나중에 템플릿을 복사해오면 됩니다.

지금 당장 노션을 켜고, 오늘 점심에 뭐 먹었는지, 내일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블록으로 쌓아보세요. 레고 블록 하나하나가 모여 멋진 성이 되듯, 여러분의 사소한 기록도 어느새 멋진 시스템으로 완성되어 있을 겁니다.

지금 바로 빈 화면에 슬래시(/)를 눌러보세요. 여러분의 스마트한 기록 생활이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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